최민호 세종시장 단식 호소의 글 ... “품격 있는 서민”
[호소문] 단식 호소에 부치는 글 ... 6일 시청 광장 앞에서 천막 단식 농성 돌입
집안에 돈이 많거나, 부모가 지위가 높거나 하는 소위 금수저의 자식이 저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월급쟁이 가장의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류학교를 나오지도 않은 저는, 그저 평범하기만 한 보통의 아내를 만나 결혼식도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예식장에서, 신혼집도 돈이 없어 축의금을 모아 준 돈으로 당시 남의 집 귀퉁이에 단칸방을 달아낸 월세방에서 신방을 꾸미고 살았습니다.
흙수저라면 흙수저였겠지만, 그런 생각이나 의식을 가져 본 적도 없었고 그저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최대의 효도요, 자식의 도리로만 알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성적이 나빠 속이 쓰렸던 것은 부모님이 실망할까봐였지 다른 이유란 없었습니다.
저는 고관대작을 꿈꾸지도, 돈많은 부자를 원하지도, 명예를 탐하지도 않았습니다.
정치를 하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평범하고, 튀지도 못하고, 잘나지도 못한 저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고시공부를 하였고, 공무원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름대로 생각을 가다듬기 시작했습니다.
공무원으로서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옳고 바른 공직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신념을 갖기로 했습니다.
정직, 정의, 정확한 공직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둘째는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100% 외화를 써 수입하는 기호품에 불과한 커피를, 공무원이 되고 나서부터 마시지 않기로 결심하고 공직을 마치는 30여 년간 마시지 않았습니다.
외화를 아껴 나라 경제를 돕자는 작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셋째는 품격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공직자로서 언어에 있어서나 상대방을 대할 때 기품을 잃지 않고, 생각과 생활을 품격있게 하고, 비열하고 비겁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을 것을 결의했습니다.
책을 가까이했고, 신의과 배려를 중히 여기기로 했습니다.
어렵고 가난하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우선하는 공직관을 철학으로 삼아 소탈한 삶을 살기로 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상이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운명이라는 것인지, 어느 날 갑자기 정치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정치에 뛰어든 동기는 ‘무엇이 되기 위한’ 것보다는 ‘무엇을 하기 위한’ 충동이었습니다.
행복도시 건설청장을 하면서 수용된 드넓은 토지를 보면서, 국가가 추진하는 세계 최신의 명품도시 세종시를 내 손으로 만들고 싶은 충동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종시장이라는 직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학연도 혈연도 지연도 아무것도 없는 세종시장 선거에 뛰어들었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그후 10년의 세월 동안 실패의 멍에를 안고 살았지만, 그러나 세종시장 이외에 어떤 공직 자리도 탐하지 않았고, 바라지도, 부탁하지도 않았습니다.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칠지언정 후배들이 일해야 할 자리를 선배가 차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선거라는, 그것도 ‘보수의 사지(死地)’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가망없어 보이는 세종시장 선거에 뛰어들면서도,
저는 평생 공직자로 가졌던 세 가지 결심을 무너뜨리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이 결심은 아직도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비정치적이고, 가장 순박하고, 가장 범생이로 살며 정치 자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제가, 어느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전국에서 유일한 여소야대라는 악조건 속에서, 가장 정치적인 이슈로 싸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단식(斷食).
생각만 해도, 저하고는 거리가 먼, 저 너머 별종의 정치 세계 인간들이 치열하게 싸우면서 하는 몹쓸 몸짓을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만 그렇게 정치의 나락에 빠져 버리게 된 것일까요?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뒤척이며,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옳은 것을 지키며,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품격을 잃지 않고 비겁하지 않을 것.
그 가치관을 지키는 것, 그것의 최종 결론이 단식이라는 답이었습니다.
저는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다시 돌아가 제가 동경했던 삶의 단어를 생각해 봅니다.
“품격 있는 서민”
장 자크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을 새기면서 ‘농부처럼 일하고 철학자처럼 사색하라’라는 말에 매료되어 제가 생각한 저의 자화상이었습니다.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는 ‘품격 있는 서민’으로 살며, 철학자처럼 사색하고, 공직자로서 초심을 잃지 않고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정의와 정직과 정확을 위한 품격 있고 비겁하지 않은 단식을 하면서 말입니다.